'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59건

  1. 2023.04.08 차주영 아버지 아빠 어머니 부모님 가족 치인트

학교폭력으로 인해 영혼까지 파괴된 한 여자가 그 폭력의 가해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계획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 이 작품에서 스튜어디스 최혜정 역은 문동은(송혜교)에게 가해하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가해자들 안에서도 멸시를 받는 피해자 중 하나였습니다.

이 복잡한 캐릭터는 차주영이라는 배우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최혜정은 속물적이면서도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친구들을 짓밟고 싶은 욕망의 감정을 차주영의 입과 몸을 통해 드러냈다. 차주영 역시 연기데뷔 7년 만에 비로소 대표작이라고 할 작품을 만났음은 물론이랍니다.


“파트 1을 방송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어요. 신중한 성향으로 열기를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무던했던 20년지기 친구들도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다음을 해나가야 하니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기, 며칠은 즐겨야겠다 싶어요.”

차주영은 최혜정을 입으면서 자신의 성격을 개조해야 했다. 캐스팅 단계에서 안길호 감독을 두 달 동안 매주 만났다. 간을 보던 안 감독이 어떻게 지냈냐는 이야기에 결국 “X같이 지냈어요”라고 역정을 내 캐스팅이 된 일화는 유명하답니다. 

“모든 인물과 서사가 매력적이니까 제가 나오는 부분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혼자 다른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 아닐까’ 염려했죠. 하지만 그런 부분은 금방 해소했어요. 단순하게 접근했죠. 작은 것에 크게 즉각 반응하는 친구였죠. ㄱ제 얼굴이 나오는 부분은 저고 뒷모습은 대역, 나오는 장면은 CG였습니다.(웃음)”

혹자는 그 장면이 꼭 필요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차주영은 상관없었다. 가진 것이 몸 밖에 없고, 거기에 수술까지 해서라도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이 최혜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폭력, 동은은 이를 극복해 스스로 일어났고 혜정은 굴복하고 말았다. 이 선을 잘 지키는 게 유일한 고민이었습니다.

“드라마가 나온 후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저희도 촬영을 하면서 ‘우리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중간에 이 모든 것들이 틀어지지 않고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그래도 괜찮은 사회로 나아가는데 작게나마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었죠. 드라마는 재미있게 봐주시고, 잘못된 것은 느끼고 그렇게라도 용서를 빌고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변화가 있다면 너무 좋겠다 싶어요.”


그의 이런 유창한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차주영은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중학교 시절 말레이시아로 유학을 가 미국에서 유타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미국 금융계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의 재원이었지만 “딱 서른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말로 부모님을 설득하고 25세 연기를 시작했답니다.

누구나 선망하고 바라는 미래를 앞둔 상황에서 그를 연기에 빠지게 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사서 고생하게 했을까. 다른 직업군과 달리 연기는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지 않는다. 30년을 연기한 ‘칸의 여왕’ 전도연도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는 것이 배우의 삶이다.

“배우는 고생하는 것이 드러나기도 하는 직업이에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극단적인 양면성이 있더라고요. 종합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결정하는 부분에서도 정말로 이성적 사고를 했어요. ‘둘 다 힘들 텐데, 내 것을 활용해서 어떤 것이 더 성취감이 있을까’하는 생각이었죠. 확률적으로 접근한 거예요.”라고 전했답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어차피 배우로 잘 안 되면 다른 것 할 수 있잖아’하는 편견의 시선에 갇히기도 했다. 그런 시선이 그를 스스로 더 다그치게 했다. 연기와 모든 것이 안 풀리는 어려운 순간도 겪었다. 시련이 극에 달했을 때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고 아예 마음을 새로 먹는 깨달음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더 글로리’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손숙 선생님이 어린 동은(정지소)에게 했던 ‘봄에 죽자’라는 대사예요. 끝날 것 같지 않고 허우적대다 그걸 겪고 나면 좋은 날이 찾아오는데, 그것만 버텨보자는 말이잖아요. 그런 시간을 겪고 이런 작품을 만나면서 ‘아 이런 날이 있으려고 버텨왔구나’ 그런 감정이 고마워서 울컥했던 느낌이 있던 것입니니다.”라고 전했답니다.

‘치즈 인 더 트랩’의 퀸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아나운서, ‘키마이라’의 기자,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최종병기 앨리스’의 비밀스러운 비서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 차주영의 경력은 ‘더 글로리’에서 한 번 큰 울림을 냈다. 이제 자신있게 “저 ‘뇌섹녀’ 아니에요”하고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낼 소리도 낼 수 있다.

마침 찾아오는 봄, ‘더 글로리’는 차주영에게 긴 겨울을 끝내고 찾아오는 봄과 같았다. 봄은 시련을 견딘 이들에게 찬란한 색감과 생명력으로 힘을 준다. 이제 그 시간이 찾아왔다. 꽃을 피울 시간이. 차주영, 봄에 피자랍니다.

Posted by 바로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