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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2.15 꼬꼬무 상문고 비리 교장 사학비리 사건 이사장 잔혹사 사태

집에 가서 채점해!" '꼬꼬무' 강남 상문고 사학비리 사건, 가짜모의고사→성적조작과 불법 찬조금…300명 넘는 학부모 VIP 리스트
- 2023-12-15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강남 명문 사립고 S고의 사학비리 사건을 다뤘습니다.

12월 13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이야깃꾼으로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이 리스너로 김정민, 크래비티 정모, 서동주가 출연해서 1994년, 강남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최악의 상문고 사학비리 사건을 다룬 ‘학교의 봄’을 들려줬다.


1993년 11월, 강남의 한 명문 사립고에서 전국 모의고사가 치러졌다. 고3을 코 앞에 두고 치는 시험이라 모범생 민근이는 바짝 긴장한 채 답안지를 채워 나갔다. 그런데 1교시 시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답안지를 걷지 않고 각자 집에 가서 채점해라고 말했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자 시험을 본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시험지를 유심히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11월 시험인데 시험지에는 7월이라고 적혀있던 것이다. 모의고사 주관 출판사에 문의한 민근이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얻은 기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는 마치 공식 모의고사인 것처럼 시험료까지 받고 풀게 한 것이다. 평소에도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보다 더 자주 더 많은 돈을 내야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거사를 도모하게 됐습니다.

이른 새벽 세 명의 아이들이 숨죽여 교문을 통과했다. 그리고는 곳곳에 직접 작성한 전단지를 뿌렸다. 이 전단지에는 그 동안 A 교장이 보여준 폭력적인 언행과 가짜 모의고사 사건 등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작성한 학생 색출 작업이 진행됐고 해당 학생들은 퇴학까지 당하게 됐답니다.

또 얼마 후 1994년 3월, 끝내 침묵할 수 없었던 교사들이 나섰는데 무려 35명의 교사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교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시청자드레에게 놀라움을 줬습니다.

'비리사학' 오명 상문고, 제자리로 돌려놓고 떠나는 '꽃박사'
- 2016. 5. 15

어느덧 잊혀졌지만, 상문고는 한때 대한민국 사학비리의 '대표선수'쯤 됐다.

강남의 이른바 8학군에 자리해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학생들이 다니던 이 사립학교는 '일류고'로 꼽혔다. 그러나 이런 영예의 타이틀 이면에는 학부모로부터 거액의 찬조금을 받아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하는 등 추악한 비리가 도사리고 있었답니다.

상문고 교장은 학교의 현직 교사들을 동원, 자신의 자녀에게 비밀과외를 시키기도 했다. 대입 원서를 쓸 때 학생들은 학급당 50만원씩 '수수료'를 걷어 학교에 갖다 바쳐야 했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자 촌지는 수표에서 현금으로 바뀌었다. 이런 불법 촌지와 후원금은 부패 교장과 비리 교사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상춘식 전 교장은 1986∼1994년 학부모로부터 거둔 찬조금 15억6천만원과 보충수업비 6억원을 유용하고 내신성적을 조작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온갖 학내 비리를 참다못한 일부 양심적인 교사들이 뒤늦게 폭로에 나선 것이 상문고 사태의 시작점이었답니다.

상문고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희대의 '부패사학'이라는 오명은 20여 년이 흘러서도 계속 상문고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사학비리를 소재로 한 영화 '두사부일체'가 상문고를 모델로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마저 나왔습니다.

이런 상문고를 정상화하는 데는 양심적인 교사들이 주요 역할을 했지만, 후유증을 치유하고 갈등을 봉합해 학교를 현재의 반열에 올려놓는데는 상문학원 상채규(78)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비리 사태 이후에도 계속된 학내 분규로 18년간의 관선 이사체제가 무너진 2012년 이사장에 취임했답니다.

최근 4년의 임기를 마친 그에게 더 있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상 이사장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젊고 유능한 분에게 이사장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물러난 뒤에는 젊고 유능한 분이 상문고 발전에 헌신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 꽃밖에 모르던 원예학자, 가문 요청에 '구원투수'로

사학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평생을 꽃 속에 둘러싸여 살아온 원예학자였다.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대구가톨릭대 강단을 오랜 기간 지켰다. 꽃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화훼학과를 한국 최초로 독립된 전공학과로 개설하기도 했답니다.

평생 '꽃박사'였던 그가 어떻게 과거 비리로 점철됐던 사학의 운영을 도맡게 됐을까.

상문고는 원래 목천 상씨 문중이 설립한 학교지만, 1994년 당시 비리와 전횡으로 구속된 상춘식 전 교장 측이 종친회의 권력관계를 악용해 법인을 개인 소유로 둔갑시켰답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정상화 이후 문중이 설립한 학교가 맞다는 해석을 내렸고, 관선 이사체제가 종료된 뒤 목천 상씨 가문이 설립한 상문고를 되살리기 위해 종친회가 나섰다. 마침 상 박사가 종친회장을 맡고 있었고, 뛰어난 인품을 지녔다고 알려진 그에게 종중은 상문고의 운영을 맡겼다.

"이사장이 되고서 들여다보니 (상문고는) 설립되자마자 엉뚱한 사람이 자기가 세운 것처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바람에, 정체성이나 교육이념 같은 것도 없었어요.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그러면 안 되죠. 건학 이념 재정립에 나섰던 것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상 이사장은 먼저 부패와 전횡을 일삼던 당시 이사회가 바꿔놓은 동인학원이라는 이름을 상문학원으로 원상 복귀시켰다. 조선 명종 때 영의정과 좌·우의정에 16년 재임한 성안공 상진(尙震)의 철학을 계승, '관용과 청렴, 덕성'을 강조하는 건학 목표를 내세웠다.

2년 전부터는 권리 이전에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성인이 되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의 성인식을 열어주고 있다고 한답니다.

건학 정신을 새롭게 다듬은 뒤에는 갈가리 찢긴 학교를 추슬러야 했다.

"사태 이후 학교분쟁이 계속됐고, 선생님들끼리 반목하고 다투는 바람에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한 학교 교직원들인데 상조회도 따로 운영했죠. 사람이 일을 하려면 마음이 안정돼야 하는데 학생들 보기도 그렇고…"라고 전했답니다.

2년의 노력 끝에 상조회 통합을 이뤄냈고, 학교는 교사들의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교장에게 학교 운영의 전권을 일임했답니다.

◇ "갈라졌던 학교 통합에 힘써…선생님들 열정 남달라 감명받아"

조직이 안정되고 보니 학교가 새로 보였다.

"처음 이사장으로 올 때는 사립학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선생님들이 아주 열성적이고 능동적이시더군요. 감명을 받았어요.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는 공립학교 교사들과 달리 한 학교에 오래 계신 사립학교 교사들의 장점은 바로 학교와 전통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점인 것입니다."라고 전했답니다.

상 이사장은 조직의 안정과 건학 목표 재정립이라는 취임 당시의 목적은 이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학교법인의 재정적 안정을 욕심만큼 이루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개교 이후 20년까지는 전 교장이 치부하기 바빠서 그랬고, 그 이후 20년은 주인 없이 관선 이사체제로 운영돼서 재정 안정을 꾀할 환경이 못됐지요. 우수학생들을 자사고와 특목고로 다 뺏기는 상황입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특별활동을 제공하고, 교사들의 복지를 높여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일반 사립고는 재정 안정이 정말로 필수적이예요."

법인소유 토지에 있던 골프 연습장이 철거당하고 나니 재단의 수익이 크게 줄었지만, 규제에 묶여 빈 땅을 수익용 사업에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임기 말까지 수익 창출 방안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느 원예 전문지에서 10여 년 전 그를 인터뷰한 내용이 눈에 띄었답니다.

천천히 읽어보니 "세상에는 꽃도 나무도 가지가지이지만, 좋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자의 눈에는 평생 '꽃 박사'인 상채규 이사장이 상문고를 떠나며 이 학교 학생과 교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혔습니다.

Posted by 바로뒤